애정하는 픽사 애니메이션
나를 포함하여 픽사의 영화를 사랑하는 '성인 마니아'들이 제법 많은 듯하다.
픽사는 디즈니라는 거대 애니메이션 회사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지만, 픽사의 영화는 아름다운 영상과 판타지로 가득한 디즈니 영화와는 결이 꽤나 다르다.
평범한 듯 아니면 조금 부족한 듯한 주인공들은 그저 그런 일상 중에서 크지 않은 사건들을 계기로 인생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 반복되는 픽사 영화의 플롯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을 전개하고 그려가는 과정과 방식이 매우 비범하다.
아마 그런 '디테일의 비범함'이 픽사 마니아를 양산하는 핵심이라 할 것이다.
소울
영화 소울의 주인공 조 가드너는 중학교 밴드부의 임시 교사 이면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재즈 뮤지션을 꿈꾸는 뉴욕의 소시민이다.
그는 최근 정규직 교사로의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그의 엄마와는 달리 그 제안이 그리 반갑지 않다. 정규직으로의 안정된 삶에 머무른다면 영혼을 울리는 재즈 뮤지션과의 꿈은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 때문이다.
정규직 제안을 받은 직후, 조 가드너의 오랜 제자의 전화가 걸어오고 재즈 뮤지션으로의 꿈을 향한 희망의 끈을 다시 이어 붙여준다. 참으로 신기하고도 얄궂은 인생의 타이밍이다.
재즈 클럽에서 치러진 오디션에서 그는 꿈에 그리던 도로시 윌리엄스 밴드의 일원이 되는 기회를 얻게 된다. 광분한 채 오디션장을 벗어나 뉴욕의 길을 걷던 조 가드너는 맨홀로 사라지고 만다.
정신 차려보니 조 가드너는 저세상(사후 세계)으로 가는 길목에 있었다. 일생일대의 꿈이었던 도로시 윌리엄스와의 공연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그는 그 세계에서 마지막 끈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새로운 인연 22를 만나게 된다.
22는 태어나기 전의 영혼으로 죽음 이전의 영혼인 조 가드너와 오묘한 인연으로 맺어지게 되고 그들은 함께 지구를 다시 방문할 기회를 얻게 된다. 오로지 공연 생각뿐인 조 가드너와 지구 생활에 대한 회의와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22의 지구 방문은 생각과 다른 결론을 향해 흘러간다.
일생의 꿈을 이룬 뒤에 큰 허무를 느끼게 된 조 가드너와 그토록 두려웠던 지구 생활의 작은 일상들에 호기심과 애정을 갖게 되는 22의 만남은 꼬이고 엉키며 좌충우돌하지만 결국 둘은 함께하며 얻게 된 깨달음으로 또 한 번의 도전을 하게 된다.
역시 픽사였다
역시 픽사였다. 사후세계, 소소한 일상, 그리고 재즈 음악...
사후 세계에 대한 묘사와 연출은 상상력 기대 이상이었고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표현하는 작은 디테일들에 대한 픽사만의 경쟁력도 여전했다. 정신없이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울컥하게 되고 심장이 두근거리게 된다.
소울의 중요한 소 주제인 재즈 음악은 조 가드너의 삶과 꿈에 감정 이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모티브로 대 활약한다. 음악을 활용하는 픽사의 능력 역시 여전했다.
인사이드 아웃의 추억 소환
인사이드 아웃이란 영화를 접했을 때 경이롭다는 생각을 했었다. 희로애락이라는 인간의 감정 그리고 그 감정의 가치라는 메시지를 말도 안 되는 상상력으로 그렸던 영화를 본 이후 픽사 스튜디오의 열혈광이 되었다.
인사이드 아웃에서는 사춘기 소녀를 통해 우리에게 '슬픔이란 감정의 가치'를 전했던 픽사는 아마도 소울에서는 감정 너머의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소울은 인사이드 아웃'의 속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내내 지울 수가 없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아마도 나뿐 아니라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갈지 모른다. 그리고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과 소중함도 놓치지 않으려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소소한 일상과 그 소중함이란 과연 무엇일까? 소울은 바로 그 일상과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한다.
우리가 이루지 못한 꿈 혹은 그것을 향한 열정이 우리의 사소한 일상보다 인생에서 더 큰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꿈을 갖고 있었으며 꿈을 향한 나의 마음과 기분이 어떠한지를 가깝고 소중한 이와 공유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인생에서는 더 소중한 가치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
매일 먹는 음식의 향과 맛을 느끼는 것.
내가 가진 신체를 온전히 그대로 활용할 수 있는 것.
내가 마주하는 인연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을 갖는 것.
지금 우리에겐 생각보다 많은 보석 같은 순간들이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