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독
개봉 당시에 19금 요소에 초점을 맞춰 홍보했던 기억이 난다. 송승헌이라는 유명 배우가 19금 영화에 출연했다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화제성은 충분히 얻었지만 흥행 성적은 조금 아쉬웠던... 화제성이 흥행으로 이어지 못한 건 아무래도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개봉당시 영화 평점과 한줄평들을 보고 관람하지 않기로 결정했었다.
넷플릭스에서 이 영화를 발견하고 킬링 타임용으로 보게 되었는데, 조금 아까운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쉬운 점이 매우 크고 명확했지만 그 외에 요소들은 생각보다 괜찮았기 때문이다.
줄거리
부대 내 신임을 받고 있는 교육대장 김진평(송승헌)은 부인 이숙진(조여정)과 무던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녀의 부인은 남편의 출세를 위해 열정적인 열혈 내조왕이다.
어느 날 폐쇄적이고 좁은 부대사회에 한 부부가 새로 입성한다. 남편 경우진(온주완)은 김진평의 직속 부하로 첫 만남부터 충성을 다하는데, 김진평은 경우진의 부인인 종가흔(임지연)과의 우연 같은 인연을 갖게 된다.
베트남전 참전 이후 마음이 병을 얻게 된 김진평은 고요한 수면 아래 내재된 불안을 지닌 사람이었고 가족에게 버려진 삶을 살다 원치 않는 결혼을 하게 된 종가흔의 아픔을 마주하게 되면서 그녀에게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게 된다.
종가흔에게 유일한 사랑을 주었던 시어머니를 위해 그녀는 김진평과의 만남을 정리하려 하지만 그는 그를 숨 쉬게 만들었고 살아있게 해 주었던 그의 사랑을 위해 지위와 가정을 모두 버리는 선택을 한다.
김진평의 인생을 건 순애보에도 종가흔은 끝내 김진평을 선택하지 않았고 결국 김진평은 홀로 베트남으로 떠난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종가흔의 이름을 팔에 새기고 그녀와의 추억을 담은 사진을 가슴에 간직한 채 사망합니다. 그의 사망 이후 그가 가슴에 품고 있던 사진이 그녀에게 전달되고 그녀는 오열한다.
아쉬운 연기
영화 인간중독에서 가장 아쉬웠던 건 두 주연의 연기다. 두 배우의 부족한 연기 탓에 관객들은 주인공의 애절한 사랑의 서사에 몰입하기 어렵다.
송승헌
송승헌이란 배우는 모델 출신 배우로 남자 셋 여자 셋이란 시트콤에 출연하며 벼락 스타가 되었다. 292513(이 숫자를 아직까지 정확히 기억한다는 것이 소름...) 스톰이란 브랜드의 모델이었고 조각 같은 외모와 몸매로 몸짱 스타의 시초가 되기도 한 인물이다. 이런저런 작품들에 출연하며 오랜 시간 활동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연기로 이름을 알리진 못했다.
인간중독에서도 송승헌의 연기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연기 경력을 생각하면 신인인 임지연을 이끌어 갔어야 할 것 같은데, 둘은 용호상박의 느낌으로 아쉬운 연기를 보였다.
임지연
개봉 당시 한예종 출신의 출신의 신인배우가 여주인공을 했다는 점이 화제가 되었다. 상대 주연배우나 베테랑 조연들에 비해 유명세가 부족한 임지연은 생소했고 당연히 조여정이 여주인공일 거라 생각하며 영화관을 방문했던 이들도 꽤 많았다. 청초하고 신비로운 임지연의 이미지는 영화의 분위기나 역할에 잘 어울렸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연기였다. (심지어 한예종출신인데...)
넷플릭스의 더글로리에서 배우 임지연을 처음 알게 되었다면 이 시절의 연기가 무척 낯설거라 생각된다. 그녀는 스스로를 타고난 재능이 없어서 노력하는 배우라고 이야기 하던데, 그녀의 일취월장한 연기력을 보면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주연들의 연기
두 주연 배우의 외모와 분위기는 영화와 정말 잘 어울렸다고 생각된다. 화제가 차 안에서의 첫 베드신 연기에서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도 훌륭했던 것 같다.
하지만 두 배우의 표정 연기와 대사 연기가 참 많이 아쉽다.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김진평이 부하의 아내인 종가흔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게 될 만큼 빠져드는 상황을 관람객들도 납득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남자 주인공의 사랑과 순애보를 애달파하기보다 이해가 안 되는 관객들이 많았을 것 같다.
훌륭한 조연들
조여정
인간중독 이전에 방자전이나 후궁 같은 화제성 높은 19금 영화에 연이어 출연했던 조여정. 그녀는 이번에도 다시 19금 영화를 선택했지만 예상과 달리 그녀의 역할은 조연이었고 노출 연기도 하지 않았다.
노출연기로 화제를 얻긴 했지만 조여정의 연기는 전작에서도 늘 훌륭했다. 풋풋했던 방자전의 춘향이나 모성 그 자체였던 후궁의 화연이나 이미 그녀는 연기로 존재감을 입증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전작들에서 그녀의 노출에 대한 화제성이 그녀의 연기력에 대한 평가를 압도하는 상황들이 이어지면서 아쉬움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도 그런 이유로 주연 대신 조연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그녀의 선택은 옳았다. 영화 인간중독에서 조여정의 연기는 조연임에도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생각된다.
조연들의 연기가 8할
이 영화는 조여정 외에도 조연 배우들의 연기가 유독 빛난다. 부인 모임을 주도하는 최중령 부인역의 전혜진 배우, 가벼운듯 만만치 않은 캐릭터 경우진 역의 온주완 배우, 평범한 듯 모난 연기를 참 잘 해낸 최중령역의 박혁권 배우 그리고 언제나 훌륭한 임사장 역의 유해진 배우 외에도 만만치 않은 에너지와 내공을 내뿜은 기타 조연들까지......
조연들의 단단하고 빛나는 연기는 이 영화의 숨은 매력이다. 그저 그런 19금 영화가 되지 않게 만든 조연들의 멋진 연기가 흥행에 실패하며 묻혀 버린 것이 못내 아쉽다.
괜찮은 연출
주연들은 관객들을 연기로 설득시키지 못했지만 감독은 나름 고군분투했다고 느껴진다. 부하 직원의 아내와의 불륜이라는 불편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두사람의 만남과 사랑에 어느 정도의 미학이 존재하는 것은 감독의 연출력 덕분이라고 생각된다.
영화를 본 뒤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 있었고 그런 장면들을 떠올릴때 조금 아련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래서 감독이 누구인지 찾아보았고 방자전을 만든 김대우 감독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김대우 감독은 전작 방자전에서도 끈적하면서도 순애보적인 사랑을 보여주었다. 김대우 감독은 미학적이고 순애보적 19금 영화를 잘 만드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인간중독 주연배우들의 연기가 조연들의 연기만큼 좋았더라면 방자전에 못지않은 좋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되어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