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재난 시리즈 중 세 번째이며 마지막 작품인 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팬심으로 관람을 결정했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무렵엔 슬픔과 감동으로 뒤범벅되어 버렸다.
스즈메의 꿈, 이방인 소타 그리고 폐허
이모와 살고 있는 여고생, 스즈메는 반복되는 꿈을 꾼다. 그녀의 꿈에선 빛이 가득한 아득한 어딘가에 누군가가 서 있다. 스즈메는 계속 그 누군가를 향해 가지만 늘 닿지 못한 채 꿈에서 깬다.
어느 아침 등굣길에서 만난 신비한 이방인이 스즈메를 설레게 한다. 소타라는 이름의 남자는 근처의 폐허 위치를 묻고 스즈메는 문 닫은 온천의 위치를 알려준다.
낯선 이방인과의 만남 이후 스즈메의 머릿속은 온통 그 사람 생각뿐이다. 결국 스즈메는 폐허가 된 온천으로 달려간다.
스즈메는 폐허 속에서 낯선 문을 발견하고 들어가려 하지만 그 문 속 세상은 스즈메를 거부한다. 문하나를 두고 고군분투하던 스즈메는 옆에서 귀여운 고양이 석상을 하나 발견하고 그 석상을 집어 올린다. 그 순간 석상은 생명체로 변해 도망가버린다.
등교 시간을 훌쩍 넘겨 학교로 돌아온 스즈메는 친구들의 환영을 받지만 이방인을 만나지 못한 스즈메는 맥이 빠져버린 모습이다. 그 순간 교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검붉은 연기에 스즈메는 알 수 없는 공포에 휩싸이게 되고 학생들의 휴대폰에선 지진 경보 알림이 울린다.
알 수 없는 강렬한 이끌림으로 스즈메는 폐허로 다시 향하게 되고 검붉은 연기를 따라간 곳에서 결국 소타와 다시 만나게 된다. 그 검붉은 연기를 스즈메가 고군분투하던 그 문에서 나오고 있었고 소타는 그 문을 닫으려 필사적으로 애쓰고 있었다.
소타를 도와 문 닫기를 돕게 된 스즈메는 그 검붉은 연기의 실체가 미미즈라는 것이며 소타가 그 미미즈가 나오는 곳을 닫고 봉쇄하는 역할을 하는 토지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스즈메가 만졌던 석상은 그 미미즈를 억제하는 묘석의 역할이었는데 스즈메가 그 석상을 집어 들면서 묘석의 역할이 봉인해제 된 것)
두 사람은 소타의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스즈메의 집에 잠시 머물게 되는데 그 사이 창문밖에 귀여운 흰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 스즈메의 눈길을 끈다. 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던 스즈메가 '우리 집 아이가 되지 않겠니?라고 얘기하자 그 고양이는 알겠다고 사람의 언어로 대답한다.
말하는 고양이에 놀랄 틈도 없이 그 고양이는 소타에게 무언가 주술을 부리고 소타의 실체는 그가 앉아 있던 유아용 의자 속으로 봉인되어 버린다. 이 모든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고양이는 도망치고 소타는 고양이의 뒤를 쫓는다.
애초에 상처만 치료해 주는 것으로 끝날 인연이 아니었던가보다. 의자가 되어버린 소타를 모른 척할 수 없게 된 스즈메는 말하는 고양이와 유아 의자가 된 소타를 함께 쫓게 된다. (스즈메의 손길로 태어난 고양이로 인한 일들이니 어찌 보면 결자해지의 길이 시작된 셈)
신카이 마코토 영화의 힘
우연 같은 필연으로 소타의 가업인 토지시의 역할을 돕게 된 스즈메, 이제 소타의 여정까지 동행하게 된다.
작은 시골마을의 여고생 스즈메가 일본 전역을 여행하며 새로운 인연을 맺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과정 속에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사랑하는 대상들을 만날 수 있다.
아름다운 시골 풍경
너의 이름은 같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작에도 시골 마을이 등장하는데, 그 묘사가 굉장히 세밀하고 또 아름다워 대상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느껴지곤 한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일본의 다양한 도시와 시골 마을이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모습들이 매력적이다.
평범한 사람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다루는 경우가 많다. 우리네 주변에 있을법한 그런 사람과 가족들을 말이다.
스즈메가 여행 중 만난 동갑내기 시골 소녀나 주점 사장님인 남매의 엄마와 같은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평범한 하루를 보면서 관객들은 어느덧 판타지로 시작된 이 영화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다.
아마 감독 스스로가 소시민들과 그들의 일상에 애정이 많은 사람일 거라 생각된다. 판타지를 차용하긴 하지만 그의 전작들도 대단한 서사와 반전보다는 일상에 초점을 둔 경우가 많았다.
미학적 일상 묘사
일상을 주로 다루기에 어떤 이들에겐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이 조금 심심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가 일상이라는 대상을 다루는 방식이 얼마나 섬세하고 감각적인지를 유념해서 그의 작품을 대한다면 그의 '비범함'에 납들이 될 것이다.
필자에게 신카이 마코토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던 '초속 5센티미터'에서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만의 미학적 일상의 힘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후의 작품들은 판타지를 차용하고 보다 스토리에 초점을 두는 경향들이 있어 그런 색깔이 조금 덜 하지만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도 범인들의 일상과 작은 도시의 풍경에 담긴 감독의 애정이 강하게 느껴진다.
세밀한 그림, 풍성한 색채 그리고 음악이 어우러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에서는 그저 그런 우리의 일상 중에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이 담겨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
두 번의 여행 그리고 성장
영화에서 스즈메는 두 번의 여행을 한다. 한 번은 '소타와 함께하는 여행'이고 그다음엔 '소타를 찾기 위한 여행'이다.
마치 로드무비처럼 펼쳐지는 스즈메의 파란만장한 여행사를 통해 감독은 많은 이야기를 전한다.
첫 번째 여행: 소타와의 여행
첫 번째 여행을 통해 스즈메는 자기의 목소리를 갖게 된다.
스스로의 선택보다는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려 시작된 여행이었지만, 여행을 이어가며 스즈메는 점점 자신의 일을 결정하고 주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어딘가 답답하고 무기력했던 스즈메는 여행 중 만난 동갑내기와의 인연에서 스스로를 '중요한 사람을 하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런 그녀의 인식과 성장은 무모해 보이는 두 번째 여행을 이끄는 힘이 된다.
두 번째 여행: 소타를 위한 여행
방법도 모르고 단서도 없이 소타를 구하러 가는 길, 이 막막한 여정을 이끄는 건 스즈메의 '의지'와 '용기'이다. 스즈메의 용기와 의지가 주변인들이 그녀를 돕고 그녀의 여정에 동참하게 만든다.
두 번째 여행에서 스즈메는 반복되던 꿈의 실체에 점점 더 다가가게 된다.
4살에 엄마와 헤어진 뒤로 이모와 함께 살게 되었던 스즈메는 이모의 헌신과 희생에 고마움을 느끼며 살았지만 마음속엔 정리되지 못한 아픔과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존재하고 있었다.
소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을 불안하고 불편하게 만들었던 아픔의 실체에 다가가려는 스즈메의 모습이 정말 대견하고 멋지다.
스즈메의 아픈 이별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그날도 그랬다.
가족들은 아침에 현관에서 인사를 나누었다.
포옹하고 배웅하며 하루를 응원했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했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가 이렇게 마음 철렁한 말이 될 수 있다니...
영화 속 가족들의 배웅장면에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스즈메의 엄마도 그날 평소처럼 병원으로 출근했지만 돌아오지 못했다. 4살의 스즈메에게 거짓말 같은 엄마의 죽음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집이 사라져 엄마가 집을 찾지 못해 돌아오지 못할까 봐 두려울 뿐이다. 집을 찾지 못하는 엄마가 너무 걱정돼서 스즈메는 계속 엄마를 찾아다닐 수밖에 없다.
일본인들의 불안과 무기력
2011년 3월, 뉴스속보에서 검은 바닷물이 도시를 집어삼키는 장면을 보면서 나 또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었다. 영화라고 해도 의심되지 않을 끔찍한 모습이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타국의 나에게도 이토록 큰 충격으로 남은 그날의 아픔이 일본인들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가 되었을까? 스즈메와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가?
대지진 이후, 현재를 중시하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고 미래를 위한 희생과 준비보다 직면한 현실과 안위에만 집중하는 경향들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 현상을 무기력이라 칭하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들도 있지만 그 기저에 깔린 불안과 상실을 고려하지 않은 듯하여 그런 비난과 평가가 가혹하다고 느껴진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위로
과거의 스즈메를 위로하는 현재의 스즈메
소타를 구하러 가기 위한 문을 찾기 위해 스즈메는 엄마와 헤어지던 날의 4살 스즈메의 기억을 돼 찾아야 했다.
그리고 결국 스즈메는 스즈메의 4살 기억 속으로 들어가 그동안 애써 부정하고 피해던 엄마의 죽음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4살의 어린 스즈메를 안아준다.
결국 매일밤 스즈메의 꿈속에 나타났던 여성의 모습은 스즈메 자신이었고 어쩌면 이 장면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보내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된다.
마음의 상처로 인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판타지에 담긴 위로와 희망
일본 애니메이션에는 자연, 판타지 그리고 샤머니즘이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아마도 일본인들의 자연재해에 대한 불안과 공포와 연관이 크지 않을까 생각된다.
일본인에게는 아마도 지구의 평화를 지키는 슈퍼히어로보다 자연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힘을 가진 신의 존재를 더 가깝고 반갑게 느껴질 것 같다.
지진을 만드는 미미즈를 통제하는 묘석과 미미즈가 나올 문을 찾아 닫는 토지시라는 존재는 가공의 판타지일 뿐이지만 지금 어딘가에서 묘석과 토지시가 지진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은 일본인에게는 생각보다 더 큰 위안이 될지도 모른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위로가 일본인들에게 잘 전해지면 좋겠다.
우리에게도 절실한, 위로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것.
사고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불가항력의 사고나 사건은 한 사람의 인생을 지배하는 상처를 남긴다.
우리의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상처와 아픔을 다룬 작품들도 꽤 많다. 하지만 우리의 방식과 접근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아픔을 복기하고 환기하며 기억하게 만드는 것에 충실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우리도 앞으로 이렇게 섬세하고 따듯한 위로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주절주절
옥에 티, 숨소리
아니! 도입부 숨소리 뭐야?
4살 스즈메가 엄마를 찾아 헤매는 장면인데 왜 숨소리가 야릇한 것임? 평점을 살펴봐도 그 얘기는 거의 없는데, 이거 나만 음란마귀가 씐 것이란 말인가? 한국인과 일본인의 신체구조가 다르기 때문인 것인가? 이 또한 일본 문화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어린애들이 아무라 엄청난 강도로 달려도 그런 숨소리가 나지 않을 거라 생각이 든다는... 난 매우 거슬렸고 이 좋은 작품에 남긴 큰 오점이라 생각함!
제목, 아쉬운 번역
일본식 제목을 번역한 것이라 어쩔 수 없을 거라 생각이 들지만, '문단속'이란 표현 때문에 일부 관객들이 조금 더 밝고 가벼운 내용을 기대하며 이 영화를 선택할 거라 생각되고 그런 분들이 감독의 의도인 '위로'보다 판타지에 초점을 두기에 영화가 실망스럽고 유치하다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ㅠ.ㅠ
청춘을 바쳤는데, 실망시켜 죄송합니다
일본문화와 한국문화에서 흡사한 점 중 하나가 '책임감'과 집단주의가 아닐까 생각되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드러나는 장면들이 있었던 것 같다. 스즈메의 이모가 '청춘을 바쳤는데'라며 자신의 헌신에 감사하지 않는 스즈메를 원망하거나 가업을 완수하지 못한 채 실망하실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소타의 모습이 우리네 그것과 비슷한 듯하여 마음이 아프더라.
씩씩한 어머니들, 주도적인 여성상
일본식 여성상이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라고 하는 평들도 있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스즈메 본인이나 이모 그리고 여행 중 만난 동갑 친구와 주점 사장님들 모두 주체적이고 씩씩한 멋진 여성들이었던 것 같다. 벼랑 위의 뽀뇨나 귀를 기울이면에서의 어머니들도 그 쿨함과 씩씩함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에도 다시금 생각하게 됨.
오해해서 미안해 다이진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연이라 할 수 있는 귀여운 고양이 다이진. 모습도 목소리도 너무 사랑스러워 반했다가 소타에게 하는 행동들 때문에 점점 미워하게 되었다. 잠시동안 귀여운 모습을 앞세워 나쁜 짓을 일삼는 '위베어 베어스의 놈놈'같은 캐릭터로 오해했음. 하지만 스즈메의 아이가 되고 싶었던 스즈메의 그것 못지않은 다이진의 절실함을 알게 되고 미안해졌음.
미미즈 기묘한 이야기?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미미즈의 힘도 세지고 형체가 더 많이 드러나는데, 보면 볼수록 기묘한 이야기가 생각나는 것임. 물론 그 영화를 참고한 것은 아니겠지만 "형체를 모르지만 매우 강한 위험"이란 설정도 비슷한 데다가 그 모습도 묘하게 닮은 데가 있어서 혹시 무의식에서라도 영향을 미친것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이...
생각보다 중요한 가사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OST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은 더욱더 그런 편임.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에서는 주제곡뿐 아니라 흘러나오는 노래들도 그 가사를 유심히 챙겨봐야 함. 두 번째 여행 중 차에서 흘러나오는 올드한 노래들의 가사도 그렇고 이 영화의 메인 주제곡의 경우도 음악도 좋지만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나오는 가사도 열심히 챙겨봐야 함. 영화 주제곡의 가사에도 감독의 의도와 영화의 메시지가 많이 반영되는 듯.
일본 남자들, 왜 표현을 안 하는지
일본 로맨스 작품을 접할 때마다 일본 여성들은 썸 탈 때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들 그리 표현을 안 하는 건지... 맨날 여주인공 혼자 사랑에 빠지고 목숨을 바치는 느낌이다. 이건 모 어떤 작품이든 거의 비슷한 것 같아. ㅠ.ㅠ (그래서 다정한 욘사마가 그렇게 인기였구나!)